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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들다 / 최서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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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수연기자
기사입력 2020-09-23

 

  © 한국예술문화타임즈



철들다

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

      최서림

 

 

 

  안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 오며 가며 낯이 익은 노점상 부부가 있다 연 3일 내리는 봄비에 괜한 걱정이 앞선다 개업 몇 달 만에 문을 닫고 만 단골 싸릿골영양탕은 또 어디에다 자리를 펼쳤는지, 철든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무서운 일이다 꺾일 대로 꺾였을 때 비로소 철이 든다고 한다 세상 물정에 눈뜨면 이미 재갈 물린 망아지가 된다 몸속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망아지가 큰일을 낸다 수천 년을 해골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다로의 연인처럼 사랑을 해도 목숨 걸고 할 수 있다 철든다는 것은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알아서 긴다는 것이다 입안에서 이 말을 가만히 굴려보면 닳아빠진 구두 밑창으로 구정물이 스며드는 애늙은이가 떠오른다

 

 

 

《최서림 시인》

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. 1993년 월간『현대시』로 등단. 현재 산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. 시집으로『이서국으로 들어가다』『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』『세상의 가시를 더듬다』『구멍』 시론집『말의 혀』『한국적 서정의 본질 탐구』 외 다수가 있다.

 

 

 

 

 

 세상 물정을 “안다는 것은 아픈 일이”라고 시인은 말한다.

 

 나는 오랫동안 행복했었다. 꿈속에선 불행이 곧 행복이었고, 행복이 곧 불행이었다. 그렇게 나는 불행한 듯 행복한 듯 세상모르고 나만을 탐구하며 살았다. 나에겐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나의 신념이었고, 내가 꿈꾸는 내가 되는 것이 나의 종교였다.

 

 그래서 나는 되고 싶은 나가 되었는가! 다소간의 성취는 있을 수 있었겠다. 그보다 나는, 나도, 어쩔 수 없이 철이 들고 말았다. 그렇게 철을 모르고 꿈속에서 꿈만 꾸며 살 것 같았던 나도!

 

 “철든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무서운 일이다 꺾일 대로 꺾였을 때 비로소 철이 든다고 한다” 나도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. 시인은 “철든다는 것은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”고 “알아서 긴다는 것”이라고 시에서 말하고 있다.

 

 한편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. “애늙은이”와 무관하게, 꼬리를 내려야 할 때 꼬리를 내릴 줄 아는 이도 아름답지 않은가! 알아서 길 줄 아는 이(비겁함과는 무관하게!)는 현명하지 않은가! 꺾일 대로 꺾여서 철이 든 이는,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할 줄 아는 이는,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처럼 헤매이되 자신을 고양시켜 세상의 거름이 되지 않던가!

 

 그러므로 철이 든다는 것은 자신을 바로 볼 줄 알게 되는 일이며, 세상의 이치에 눈떠 사리분별력이 생기는 일이다. 비로소 참다운 어른이 되는 일이다. 마냥 쓸쓸하고 아픈 일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.

 

 이 시각에도 나라의 예산을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한 일부 몰지각하고 철들지 않은 어른들은 제발 철 좀 들어서 “꼬리를 내”릴 줄 알게 되기를 바란다.(홍수연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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