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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마와 숙녀 / 박인환 시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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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우기자
기사입력 2018-12-21

 

▲  잡지의 표지처럼



목마와 숙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박인환            

 

 

 

[1]한 잔의 술을 마시고

    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

     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

     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

     가을 속으로 떠났다,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

     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

     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

     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

    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

    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

     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

 

[2]세월은 가고 오는 것

     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

     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

     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

     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

      ---------등대에----------

     불이 보이지 않아도

     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

     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.

     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

     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

    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

     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

     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.

 

[3]인생은 외롭지도 않고

     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

     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

     목마는 하늘에 있고

     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

     가을 바람 소리는

 

 

 

     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…….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-<박인환 시선집>(1955)-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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